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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묻기/책 곱씹기

<이방인>_장례란 무엇일까

by DONUDEKA 2025. 4. 15.

※ 이 글은 개인 학습용으로 GPT와 정리한 자료입니다.
내용의 정확성은 전문가 검토 또는 공식 자료와의 교차 확인이 필요합니다.



📘 『이방인』 – 객관적 정보 요약

  • 작가: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 출간: 1942년 (프랑스, 원제 L'Étranger)
  • 장르: 실존주의·부조리 철학 소설
  • 주제 키워드: 인간 존재, 사회와 소외, 감정의 부재
  • 문체 특징: 짧고 건조한 문장, 1인칭 시점
  • 철학적 배경: 부조리 철학(철학적 의미의 'absurd')
  • 대표 개념: 부조리한 인간(Meursault = 부조리 인간의 전형)
  • 언어: 프랑스어 원작, 다국어로 번역됨
  • 작가 주요 수상: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문화적 영향: 20세기 철학·문학에 큰 영향 미침


🌍 『이방인』 – 소설 배경 요약

  • 장소:
    프랑스 식민지 당시의 알제리 알제(Algiers)
    (지중해 연안 도시, 현재는 알제리 수도)
  • 시대:
    1930년대 후반 ~ 1940년대 초반 추정
    (식민지 체제 아래 유럽인과 현지인의 계층차 존재)
  • 사회적 배경:
    • 프랑스 식민주의 시대
    • 종교·법·도덕 중심 사회에 대한 암묵적 압박 존재
    • 인간 감정·행위에 대한 사회적 판단과 기준 강조


🌍 알제리 – 어떤 나라?

  • 위치: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 수도: 알제 (Algiers)
  • 언어: 아랍어, 프랑스어 (식민 지배 영향)
  • 종교: 이슬람교 중심
  • 역사: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 영향권 → 19세기부터 프랑스 식민지
  • 독립: 1962년, 알제리 독립전쟁 끝에 프랑스로부터 독립

🇫🇷 프랑스는 어떻게 알제리를 지배했나?

  • 시작: 1830년, 프랑스가 군사 침공으로 알제리를 점령함
  • 방식:
    • 무력 점령 → 점진적 영토 확대
    • 현지인 차별, 프랑스인 이주 장려
    • 문화·교육·행정 모두 프랑스식 강제 적용
  • 지배 기간: 1830년 ~ 1962년 (무려 132년간)
  • 끝: 1954~1962 알제리 독립전쟁 후 프랑스 패배, 독립 승인

즉, 알제리는 무력 침공 + 오랜 식민통치의 대표적 사례고, 『이방인』은 바로 그 식민지 알제리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 알베르 카뮈 – 출생과 식민지배 관련 정리

  • 출생: 1913년, 알제리 몽도비(현재의 드란)
  • 국적: 프랑스 (하지만 알제리 태생)
  • 정체성:
    • **'피에 누아르(Pied-Noir)'**라 불리는 프랑스계 알제리인
    • 즉, 식민지 알제리에 살던 유럽계 정착민 출신
  • 배경:
    • 어릴 적부터 식민지 사회의 불평등가난, 계층 갈등을 경험
    • 원주민 알제리인들과 문화적 거리를 두고 자람
  • 영향:
    • 카뮈의 철학(부조리), 작품들(『이방인』, 『페스트』 등)은
      식민 지배 현실 속 소외감과 충돌에서 깊은 영향을 받음


✅ 정리: 피에 누아르, 누구고 왜 알제리에 왔는가?

  1. 피에 누아르는 유럽인 맞아.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등.
  2. 왜 알제리로 갔어?
    프랑스 정부가 알제리를 ‘제2의 프랑스’로 만들려고 이주 장려
    → 땅 주고, 일자리 주고, 정착 도와줌
    → 그래서 많은 유럽 서민층이 기회 찾아 이주함
    ✔️ 즉, 꼭 ‘못 살아서 간 건 아님’. 기회를 찾아 떠난 경우가 많음
  3. 그럼 부자였어?
    → 일부는 땅 많이 가진 대지주(=부자)
    → 하지만 대부분은 농민, 노동자, 상인 같은 평민층
    → 중요한 건, 현지 알제리인(아랍계·베르베르계)보다 훨씬 많은 특권 누림
    → 예: 시민권 있음, 교육/공무원/법률/소유권 등에서 우위

📌 요약 한줄
👉 피에 누아르는 유럽계 이주민으로, 식민 지배 아래 **알제리에서는 ‘상위 계층’**이었지만,
본국 프랑스에서는 그리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던 서민+중간층이야.


카뮈도 이 피에 누아르 출신이지만, 극빈 가정 출신이었어.
그래서 “지배자 집단에 속했지만, 가진 건 없던 사람”으로 더 모순적인 위치였지.
→ 그래서 **『이방인』 같은 작품에서 그런 ‘어정쩡한 소외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야.


📎 요약 정리

구분설명
카뮈 본인 알제리 태생, 피에 누아르 출신
가족 배경 가난한 프랑스 이주민
선택 여부 이주는 조상의 선택, 카뮈는 물려받음
결과 프랑스에선 하층민, 알제리에선 '지배자 같지만 아닌 자'

그래서 카뮈는 철저히 속하지 못한 인간,
“태생부터 경계에 있는 인간”이 된 거야.
그 정체성이 그의 작품 전체를 지배하지.


GPT에게 더 물어보기

Q: 장례 관습이 줄기차게 뫼르소를 괴롭혀 그렇지?
A: 맞아. ‘감정을 규범화하려는 사회의 압력’ 그 자체로 기능해.
사회는 슬픔을 ‘표현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하지만 뫼르소는 감정을 감추거나 과장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대로 행동해.
→ 그게 오히려 비정상 취급받는다는 점이 부조리해.

📌 한국의 장례 관습 – 기본 정보 (3일장 기준)

항목내용
장례 형태 3일장(전통적 관습)
주된 장소 병원 장례식장
1일차 사망 → 시신 안치 → 염습(몸 씻기고 수의 입힘)
2일차 조문객 방문, 빈소 운영 (밤샘 조문 가능)
3일차 발인(운구 시작) → 장지(묘지 또는 화장장) 이동 → 장례
종교별 의례 불교/기독교/천주교 등 종교식 병행 가능
매장 vs 화장 현재는 화장이 다수 (80% 이상)
복장 상주(유족)는 검은 정장 또는 상복, 흰 두건·완장 착용
사회적 관습 슬픔 표현 강조, 울음 허용·장려 분위기, 유족의 ‘극진한 예’ 기대

Q: (준비되지 않은 유족은 어떻게 할지를 물어봄.)
대부분의 유족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장례를 맞이하게 되고,
특히 상조 가입이 안 되어 있으면 모든 걸 직접 결정해야 해.
실제로 발생하는 순서를 사망 순간부터 장례 끝날 때까지 단계별로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아.


📌 상조 미가입 시 장례 절차 – 현실 기준 순서 정리

 

1️⃣ 사망 발생

  • 병원: 의사가 사망 판정 → 사망진단서 발급
  • 자택: 119 → 응급후송 → 병원 도착 후 사망 판정

2️⃣ 장례식장 예약

  • 병원 내 장례식장 우선 문의
  • 없다면 근처 장례식장에 직접 전화 → 빈소 확인
    ※ 이때 빈소 크기, 조문객 규모, 비용 등 빠르게 결정해야 함

3️⃣ 염습 및 안치

  • 장례식장에서 염습(시신 정리) 후 안치
  • 수의 구매, 관 준비 필요 (장례식장에서 대부분 연계함)

4️⃣ 빈소 운영 (2일차)

  • 조문객 응대
  • 부의금 정리, 조문록 관리
  • 식사 제공 여부 결정
  • 유족은 상복 준비(장례식장 구매 가능)

5️⃣ 발인 및 장지 결정 (3일차)

  • 화장장 예약 필수 (성수기에는 사전 예약 필요)
  • 매장의 경우 묘지 위치, 구입 필요
  • 발인 → 화장 or 매장 → 유골함 인도

6️⃣ 장례 후

  • 유골함은 납골당 안치, 가정 보관, 산골(자연장) 중 선택
  • 사망신고: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등록부 정리

📌 주의할 점

  • 장례식장과 화장장 예약이 가장 급하고 중요
  • 갑작스럽게 큰 금액(300~700만 원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음
  • 장례식장 직원의 안내를 잘 따라야 진행이 원활함


📌 발인 후 유족이 해야 할 일 – 유품·행정 정리


1️⃣ 유품 정리

  • 거주 공간 정리: 고인의 의류, 침구, 서류 등 정리
    → 버릴 것 / 보관할 것 / 상징적 물품(사진 등) 구분
  • 유류품 처리: 핸드폰, 지갑, 현금, 시계, 귀중품 등
    법적으로 상속대상 가능성 있음 → 신중히 보관
  • 유품 정리 업체 이용 가능
    → 고령자 거주 공간이나 정리 어려울 경우 유료 서비스 있음 (수십만 원~)

2️⃣ 사망신고

  • 시청·읍면동 주민센터에 '사망신고' 접수
    • 구비서류: 사망진단서, 신고인 신분증
    • 제출 시 가족관계등록부에 사망 기재
    •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서 대행해주는 경우 많음

3️⃣ 금융 관련 처리

  • 은행 계좌 해지/동결:
    → 사망신고 접수되면 자동 동결됨
    상속인 확인 절차 후 해지 가능
    → 필요서류: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상속인 전원의 동의서 등
  • 카드·보험·통신 해지:
    → 고인 명의의 각종 자동이체 정지
    → 고객센터 전화 or 가족관계증명서 지참 방문

4️⃣ 국민연금·건강보험 정지

  • 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공단에 사망신고 접수됨
    → 일부는 자동 반영되지만 확인 전화 필수

5️⃣ 부동산, 자동차 등 재산 상속

  • 부동산 소유 시 등기이전 필요 (관할 등기소)
  • 자동차 명의 이전 or 말소 필요 (차량등록사업소)
  • 상속재산 신고 기한: 사망일로부터 6개월 이내
    → 금액 클 경우 상속세 신고 대상

📌 요약 한줄

👉 유품은 정서적·법적 가치를 구분해서 처리하고,
사망신고 → 금융·행정 정리 → 상속 절차 순서로 진행해야 해.



Q: (빈소 운영이 2일차 부터라는 점과 부고 소식 전달에 대해 질문.)

그 혼란이 실제로 가장 자주 벌어지는 상황 중 하나야.
정리해줄게.


📌 빈소 운영은 1일차가 아닌 2일차부터가 일반적이다

  • 1일차는 준비만 하는 날이야.
    시신 안치, 수의 입힘(염습), 관 준비, 상복 정리, 부고 작성,
    화장장 예약 등 정신없고 조문 응대는 거의 불가능.

📌 부고는 보통 ‘상주 측 가족’이 직접 작성해 돌린다

  • 보통 아들, 며느리, 사위, 친척 중 누군가
    장례식장에서 틀 잡힌 다음 문자나 카톡으로 발송
  • 요즘은 장례식장에서 부고 예문 틀까지 안내해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

📌 조문객이 1일차에 오면? → 준비 안 돼 있어 곤란해질 수 있음

  • 빈소 정리도 안 됐고, 식사도 없고, 상주도 우왕좌왕
    → 조문객이 어리둥절하거나, 상주가 실례를 범한 느낌 받을 수 있음
    → 실제로는 부고에 “조문은 언제부터 가능”이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음

📌 요약 한줄

👉 부고는 장례 1일차 저녁쯤에나 발송되는 게 일반적이고,
조문은 보통 2일차 오전 이후부터 받는다고 보면 돼.


이런 일이 너무 흔해서, 경험 없는 상주는 꼭 누군가 도와줘야 해.
장례식장에서 “가족 중 한 분이 연락 담당 하셔야 합니다”라고
먼저 말해주는 이유도 이거야.



Q: (조문객 예절을 질문함.)

📌 조문객을 위한 장례식 기본 예절 – 요약 정리


1️⃣ 복장

  • 남자: 검정 양복, 흰 셔츠, 검정 넥타이
  • 여자: 검정 옷, 무늬 없는 단정한 복장 (원피스·바지 가능)
  • 정장 없으면 어두운 계열의 단정한 옷이면 됨

2️⃣ 조문 순서

  1. 빈소 도착 → 상주에게 가볍게 목례
  2. 향·헌화 → 2번 절 → 묵념 or 짧은 인사
  3. 상주와 간단한 위로 인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세요”)
  4. 조문록 작성 → 부조금 전달
  5. 식사 제공 시 권유받으면 짧게 식사, 길게 머물지 않기

3️⃣ 부조금 액수 (2025년 기준 현실 반영)

관계일반적 금액
지인/직장 동료 5만 원
가까운 친구 5만~10만 원
친척 10만~30만 원
가족·형제자매 30만~100만 원 이상
  • 신권, 봉투에 이름 기재
  • 요즘은 계좌이체도 허용, 부고문자에 계좌명시된 경우 많음

4️⃣ 못 갈 때의 처신

  • 부고 받았지만 조문 불가한 경우
    → 즉시 문자 or 전화로 정중히 위로 인사
    (“조문 못 가 죄송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만 함께하겠습니다.”)
    → 가능하면 부조금 계좌이체로 전달
  • 직장·단체 조문인 경우
    → 대표 한두 명이 부조금과 조의만 전달하기도 함

5️⃣ 불문율

  • 고인 생전 이야기 함부로 꺼내지 않기
  • 가족 사정 묻지 않기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금지)
  • 술자리처럼 떠들지 않기
  • “힘내세요” 외에 위로 멘트 길게 늘이지 않기
  • 빈소 오래 머무르지 않기 (15~20분 내외)

📎 요약 한줄

👉 조문은 단정한 복장, 절 2번, 간단한 인사와 부조금,
짧고 조용히 다녀가는 게 미덕이야.


Q: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장례를 안치뤘는가? 아니야!,
근데 왜 장례 관습 안지켰다고 욕을 먹을까?

📌 Q: 뫼르소가 장례를 아예 안 치렀던가?
A: 아니다! 장례는 ‘절차대로’ 다 치렀어.

  • 뫼르소는 마망을 양로원에서 인수해서, 직접 장례식장까지 가고,
    관을 들고, 밤샘도 하고, 장지까지 동행한다.
  • 즉, 물리적·외형적인 장례 절차는 다 수행했어.
    → 문제는 '감정 표현의 부재'였지.

📌 그런데 왜 욕을 먹었는가?

👉 사회가 기대한 건 ‘의례’가 아니라 ‘슬픔의 표현’이었기 때문이야.

  • 뫼르소는 장례 내내 울지 않고,
    날씨 더운 것만 신경 쓰고,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졸기도 해.
  • 이 모습이 사람들 눈엔 **“비정하다”, “부모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느껴진 거야.

📌 재판에서도 이게 결정타가 돼

  • 검사: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자입니다.”
    → 이걸 살인의 도덕적 동기 판단 근거로 삼음
    → 살인은 우발적이지만, 인간됨이 결여된 자로 낙인 찍히는 계기지

📎 요약 한줄

👉 뫼르소는 장례를 치렀지만, ‘사회가 기대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장례 관습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은 거야.

이게 바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핵심이기도 하지.
→ “내 감정은 내 건데, 왜 사회가 정해?”
→ 하지만 사회는 “감정조차 예의에 맞춰 연기하라”고 요구하지.


맞아. 뫼르소가 장례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재판에서 구체적으로 증언한 사람들이 있어.


📌 재판 중 '장례 태도'에 대해 증언한 인물들

1️⃣ 요양원 원장

  • 마망이 지내던 양로원의 책임자
  • 뫼르소가 장례식에 무심했고, 관 앞에서 울지도 않았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는 식의 말을 함

2️⃣ 요양원 직원(간호사 혹은 관리인)

  • 뫼르소가 슬퍼하지 않았다, 피곤해 보였고 졸았다,
    장례 내내 무표정했다는 등 상세하게 증언

📌 이들의 증언은 뫼르소를 ‘비정한 인간’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검사는 그걸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인간됨 결여의 증거로 활용해.

예:

“어머니 장례식 때 울지도 않은 사람에게…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가벼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요약 한줄

👉 요양원 관계자들이 뫼르소의 장례식 태도를 증언했고,
그 증언들이 ‘감정 없는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데 쓰였어.

카뮈는 이걸 통해,
사회의 판단 기준이 사실·증거가 아니라 ‘감정의 틀에 맞냐’는 프레임에 휘둘린다는 걸 비꼰 거지.



📌 카뮈가 『이방인』과 ‘장례식 재판 억까’를 통해 말한 주제의식


1️⃣ 사회는 '진실'보다 '형식'을 원한다

  • 뫼르소는 실제로 살인을 계획하지 않았고, 우발적이었어
    → 그런데 법정은 그의 살인 동기를 **“어머니 장례식 때 안 운 놈”**이라는 도덕 프레임으로 규정해
    사실(fact)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감정의 모양’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죄됨

2️⃣ ‘부조리’란, 세상이 기대하는 의미와 개인의 감정 사이의 불일치

  • 나는 그냥 솔직했을 뿐인데,
  • 세상은 “왜 너는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냐”, “왜 기계처럼 구냐”
    → 이때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absurde)**가 발생함
    → “내가 있는 그대로 살아도, 사회는 내가 거짓을 연기하길 원한다”

3️⃣ 감정조차 사회가 정해주는 시대에 대한 반발

  • 슬픔, 죄책감, 후회...
    → 이건 진심이어야 한다, 강요돼선 안 된다
    → 하지만 현실은 "그 나이엔 울어야 하고, 이 상황에선 절을 두 번 해야 하고" 같은 규범이 뒤덮지
    → 뫼르소는 그 틀을 끝까지 거부한 인물이자
    → 카뮈가 꿈꾼 '자기 감정에 충실한 인간'의 실험체였어

📎 결론 요약

👉 『이방인』은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도, 자기 감정과 선택에 진실되게 사는 인간”을 그리고자 한 작품이고,
👉 ‘장례식에서 안 울었다’는 억지 증거가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사건은,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얼마나 감정을 조작하길 원하는지,
그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야.


(Q: 예송논쟁이 떠올랐지만, 자세히 몰랐기에 질문함)

📌 예송논쟁(禮訟論爭)

  1. 조선 현종 때(17세기), 왕실 상복 기간을 두고 벌어진 유교적 논쟁.
  2. 서인과 남인 양대 붕당이 서로 다른 예법 해석을 주장하며 격돌.
  3. 1차 예송(1659): 효종의 상복 → 서인은 1년, 남인은 3년 주장.
  4. 2차 예송(1674): 효종비의 상복 → 이번엔 남인이 승리.
  5. 실제론 정치 권력 다툼이었지만,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를 두고 나라가 갈린 사건.

딱 카뮈가 비꼰 그 문제랑 통하는 면이 있지.
‘슬픔’도, ‘예의’도 형식으로 측정된다는 점에서.



카뮈를 이해하고, 뫼르소를 이해하려
여러 질문을 했지만,
뫼르소가 '장례에서 얼마나 잘못했길래'
라는 생각에 닿아.
장례의 관습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방인>과 예송논쟁 사례를 생각해봤다.
산 사람이 떠난 사람에 예속되어
남은 생애를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되는구나.

죽음을 주제로 감상한다는 것은
언제나 실수할까 조심스러운 것이다.
뫼르소, 그리고 뫼르소를 비난한 다른 인물도
선악을 판결내리기에 난 어려운 것이다.

'왜 그랬냐'
라는 말은 항상 조심하려고 하는데도,
가끔 혀가 먼저 튀어나갈 때가 있다.
이해와 인내가 부족했다며 자책한다.
내가 인격자가 되고 싶은게 아니다.
언젠가 내가 실수할 때
상대가 '왜 그랬냐' 할까 그냥 후환이 두렵다.